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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이어온 전주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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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지이미지

예로부터 임금님 진상 품목이었던 전주한지는 종이가 숨쉬며 살아가는 과학이다. 전주는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를 담고 있는 천년명품으로 생활화, 산업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한지산업지원센터를 건립해 기술개발과 판로개척, 인력양성 마케팅 지원 등 기반마련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이미 전주한지는 UN 한국대표부와 사무총장 관저를 한지로 꾸미고, 튀니지 국립도서관 고문서 복원에 사용되는 등 상품성을 이미 검증받았다.

과거의 자료 및 문헌을 토대로 볼 때, 고려시대부터 외교문서와 임금에게 올리는 문서에 전주한지가 쓰일 정도로 그 용도가 매우 다양하고 특수하였다. 이러한 전주 한지의 명성과 위상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조선시대 닥나무 산지는 그 재배가 불가능한 관북지방이나 고산지대를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었고, 한지도 전국적으로 생산되었지만 전라도의 한지가 매우 유명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 전라도 편>을 보면 특히 전라도에서 생산된 한지의 지종을 매우 다양하게 열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교통이 편리하고 원재료인 닥나무가 풍성하고 용수의 조건이 좋은 지역을 중심으로 한지생산지역을 형성하게 된다. 이에 종이 공물 상납이 가장 많이 부과된 곳은 전라도와 경상도였으며, 그 중에서 <동국여지승람>에는 전주를 상품지의 산지라고 하였으며, <여지도서>와 <대동지지>에는 조선시대 전주의 한지가 최상품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라도가 한지의 주생산지였음은 조선말의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1910년 자료에 의하면 전라도와 경상도가 한국 한지의 70 ~ 80%를 생산하였는데 전북에서 전국 40%를 생산하였으며, 생산 호수도 전북은 1772호로 경북의 572호나 충북의 1515호에 비해 월등히 많았던 것으로 조사해 놓고 있다. 전북에서도 특히 전주, 임실, 남원, 순창에 이르는 지역에서의 생산이 많았으며, 따라서 인근에서 생산된 한지의 수집과 거래의 중심지로 전주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한지를 기반으로 전주의 출판 산업도 서울, 대구와 함께 크게 활성화되었으며, 전주가 한지 원료산업, 한지 제조산업 뿐만 아니라 한지 유통산업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종이의 주생산지로서 전라도의 위상은 일제강점기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발행된 『전라북도의 특산물』에서 읽어 볼 수 있다. 이 책에, 전북의 특산물이라 하여 조선지를 첫 페이지에 싣고 있다.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전주한지가 고려시대에서부터 국내 최상으로 자리를 굳인 것은 원료인 닥나무의 조달이 용이하고, 종이의 질을 좌우하는 용수의 질이 타 지역보다 우월한 점에 힘입었으며, 용수는 철분이 함유돼 있지 않아 한지 제조에는 더 없이 좋았기 때문이다. 또한 전주의 일찍이 발달한 문화와 더불어 한지의 수요가 많았기에한지산업이 크게 발전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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