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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역사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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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역사의 땅 전주

전라북도 도청 소재지 전주

역사를 보면 전주(全州)라는 지명이 처음 사용된 때는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으로,완산주를 전주로 개명하면서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다. 1253년의 역사를 간직한 천년(千年)도시가 바로 전주이다. 900년 견훤이 세운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전주는 조선왕조 500년을 꽃피운 조선왕조 발상지이다.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전 지역과 제주도까지 관할했던 전라도의 실질적인 수도로, 행정중심지로 큰 역할을 담당한 도시이다.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나라의 수도였던 곳이 6개소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주는 도읍지의 요건을 갖춘 완벽한 도시 면모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주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판소리의 본고장으로, 전통생활양식의 근간인 한옥·한식·한지 등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를 담고 있는 도시이다. 주변의 드넓은 평야와 바다가 연결되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갖춘 전주는 일찌감치 풍요의 고장으로 인정받았으며, 이러한 풍요와 여유로움은 전통문화를 꽃피우고, 섬세한 멋과 맛의 고장으로 천년 세월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천년고도 전주, 전주에도 4대문이 있었다

1907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의해 4대문 중 3대문이 동시에 철거되면서 현재 유일하게 풍남문만 일부가 남았지만, 분명 전주에도 4대문이 있었다. 동문은 완동문(完東門), 남문은 풍남문(南門), 서문은 패서문(沛西門), 북문은 공북문(供北門)이다현재 동문은 책방거리와 동부시장의 중간쯤(동문사거리)이며, 이곳에서 경기전을 안쪽으로 끼고 성곽을 축조, 현존하는 풍남문에서 남문을 이루었다. 다시 남문시장 도로를 따라 성곽이 이어져 현 다가동 파출소 앞에서 서문을 일으키고, 시네마 극장 앞 도로를 따라 성곽이 세워졌고 현 오거리(북문승강장)옆에서 북문을 일으킨 뒤 동문에 연결되는 형태가 전주성이다. (최창조·「한국의 풍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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